한국정치
결국 희생양은 청년, 국민연금 개혁안 "더 내고 더 받는다"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는 1988년 국민연금 제도가 도입된 이후 세 번째 개혁으로, 지난 2022년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특위가 구성된 지 972일 만이다. 개혁안이 확정되기까지 여야 간 공방이 있었지만, 본회의 표결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재석 의원 277명 중 찬성 194명, 반대 40명, 기권 43명으로 가결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2026년부터 매년 0.5%씩 인상돼 2030년에는 13%에 도달한다. 소득대체율도 2026년부터 43%로 상향 조정된다. 이로 인해 월 309만 원의 소득을 받는 직장인의 경우, 현재보다 매달 6만1800원을 추가로 납부하게 된다. 반면 은퇴 후 연금 수령 시에는 매달 약 9만2000원을 더 받게 된다.
이번 개정안에는 군 복무 및 출산 크레디트 확대 조항도 포함됐다. 군 복무 크레디트는 기존 6개월에서 12개월로 늘어났으며, 출산 크레디트는 첫째 자녀부터 12개월을 인정하고 기존 50개월 상한을 폐지했다. 저소득 지역 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지원 대상도 확대됐다. 하지만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개혁 방안은 논의되지 않았다. 여야는 이를 논의하기 위한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으며, 위원회는 국민의힘 6명, 더불어민주당 6명, 비교섭단체 1명 등 총 13명으로 꾸려졌다. 활동 기한은 올해 12월 31일까지지만, 필요시 연장될 수 있다.
연금개혁안 처리는 막판까지 난항을 겪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대한 합의는 일찍 이루어졌지만, 군 복무 크레디트 기간과 연금특위 구성 방식 등을 두고 여야가 대립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합의된 12개월이 아닌 18개월로 군 복무 크레디트를 확대할 것을 주장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이견으로 인해 개혁안 처리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의 중재로 최종 합의가 이루어졌다. 민주당은 군 복무 크레디트 12개월안을 수용했고, 여당은 ‘여야 합의 처리’ 문구를 합의문에는 포함하되 본회의 안건에서는 제외하는 방식으로 조율했다.
연금 개혁안이 통과된 배경에는 조기 대선이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야 모두 차기 정권을 누가 잡든 연금 개혁이라는 부담을 떠안기 싫었기 때문에 조기 처리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현행 보험료율을 유지할 경우 2034년 이후 연금 재정이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더는 개혁을 미룰 수 없다는 절박감도 작용했다.

그러나 개혁안이 통과된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청년 세대의 부담 증가에 대한 반발이 크다.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이번 개혁안은 기성세대가 청년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긴 것에 불과하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국민의힘 소속 우재준, 배현진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장철민, 전용기 의원을 포함한 3040 세대 정치인 83명이 반대 또는 기권표를 던졌다. 당내 중진인 안철수 의원도 “이 개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돼야 한다”며 보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야는 연말까지 구조개혁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다층적 소득 보장체계를 정비하고, 연금 재정 안정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주장하는 여당과 노동계 반발을 우려하는 야당 간 입장 차이가 커 논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국민의힘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은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민주당 노종면 원내대변인도 “이번 개혁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지속적인 논의를 약속했다.
한편, 이날 본회의에서는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연루 의혹과 인천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상설특검법도 야당 주도로 통과됐다. 김 여사 관련 특검법은 도이치모터스, 삼부토건, 우리기술의 주가 조작 연루 여부와 명품가방 수수,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개입 의혹을 조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인천세관 마약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외압이 있었는지 여부도 특검 수사를 통해 밝혀질 예정이다.
여야가 어렵사리 합의한 국민연금 개혁안이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구조개혁 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향후 정치적 역학관계와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다.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미래 세대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실질적인 개혁이 이루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