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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사과, 우는 농부..기후변화가 앗아가는 우리 사과

 "10년 넘게 키운 사과나무, 아깝지만 어쩔 수 없죠." 경북 청송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김 씨의 한숨 섞인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이상고온 현상으로 김 씨는 과수원 재배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야 했다. 자동화 장비를 도입하고, 수확 인력을 줄이는 등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지난해 청송 지역 농민들은 '스마일 사과'라는 낯선 현상에 직면했다. 사과 껍질이 가로로 터져 마치 웃는 듯한 모양을 띠는 이 현상은, 30년 경력의 베테랑 농부들조차 처음 겪는 일이었다. 수확량의 30~40%가 '스마일 사과'로 판정받는 참담한 결과는, 기후변화가 농가에 드리운 그림자를 여실히 보여준다.

 

원래 사과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과일이다. 경북이 오랫동안 사과의 주산지로 명성을 떨친 이유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이러한 '상식'을 무너뜨리고 있다. 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사과 재배지는 강원도까지 북상했고, 이 추세라면 국산 사과가 우리 식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농촌진흥청의 예측은 더욱 충격적이다. 2070년대에는 강원도 일부에서만 사과 재배가 가능하며, 2090년대에는 국내에서 고품질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곳이 아예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상기후로 인한 생산량 감소는 곧바로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금사과'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사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명절 선물 세트 가격은 몇 년 전의 두 배 수준으로 뛰었고, 소비자들의 부담은 커져만 간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자료에 따르면, 사과 도매가격은 평년 대비 110%나 폭등했다. 전문가들은 생산량 감소와 공급 부족이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한다.

 

유통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롯데마트는 강원도 '양구 펀치볼 사과'를 출시하고, 이마트는 강원도 사과 물량을 확대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강원도 지역의 일교차가 커 당도 높은 과일을 생산할 수 있다"며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내비쳤다.

 

'스마일 사과'는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기후변화가 우리 농업과 식탁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보여주는 경고 신호다. 이대로라면, 우리가 사랑하는 국산 사과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